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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요리] 까치까치설날 요리 survival cooking

떡은 보이지도 않는 내 떡만두국. 국물 색이 저렇지 않았는데 어두운 데서 사진을 찍었더니..

크리스마스든 설날이든 명절에 별 의미를 두지는 않지만 좋아하는 명절 음식 챙겨 먹는 것만은 게을리하지 않는다. 예를 들면, 크리스마스에는 푸와그라, 설날엔 떡국! 그렇지만 크리스마스여도 뷔슈 드 노엘은 싫고 설날이어도 전이나 잡채, 약식 같은 것은 만드는 일이 없다. 명절 핑계로 내가 먹고 싶은 것만 만들어 먹는 것. 설날에 먹는 갈비찜과 조기구이도 좋아하지만, 갈비찜은 손이 많이 가고 고기 요리니까 잘 만들지 않고, 조기구이는... 한국을 뜬 이후로 생선가게에서 조기를 본 적이 없다. 난 영어로 조기가 뭔지도 몰라. 사실 봐도 못 알아볼지도 몰라.

올해는 오랜만에 떡국을 만들어 먹었다. 설날 아침에는 출근을 해야 하니까 까치설날, 일요일 점심으로. 이름은 떡국이지만 나는 떡국을 좋아하지 않아서, 떡만둣국. 떡 같은 거 안 든 만둣국이 난 더 좋지만, 그래도 설날이니까 떡을 좀 넣어봤어. 설날 너는 나에게 고마워하라.

설날 큰집에 가면 이북 출신 큰어머니가 끓여주시는 (떡)만둣국이 정말 맛있었다. 갈비찜은 엄마 거, 만두는 큰어머니 거! 큰집의 만두는 크기나 소로 보면 개성식인데 피 두께로 보면 평양식이었던 것도 같다. 아니면 개성식인데 피를 집에서 얇게 만들기가 어려워서 피가 두꺼운 개성만두? 어렸을 적에 동생이랑 사촌들이랑 밀대나 맥주병 등으로 만두피를 밀며 장난치는 게 재미있었는데, 만두피까지 만드는 게 힘들어져서 나중에는 피는 사서 쓰기도 했다. 만두 빚는 것도 여럿이 둘러앉아서 하면 재미있지. 잔치 분위기가 가장 무르익던 순간이 만두 만들 때였던 것 같다. 나이 차이가 크게 나서 내가 꼬꼬마였을 때 이미 성인이었던 사촌 오빠가 전 부칠 때 옆에 앉은 한 무리는 커다란 통에 만두소를 만들고, 다른 한 무리는 만두피를 밀어 찍고, 소와 피가 준비되면 두 무리가 함께 만두를 빚었다. 설날 아침 큰 거실에 상 여러 개를 길게 이어붙여 온 식구가 모여 앉아 만둣국을 먹다가 유난히 재미있게 생긴 만두가 나오면 이건 누가 빚은 만두냐, 그건 내 만두다, 하며 웃기도 하고.

한둘이 만들어서는 재미도 없을 테니 만두는 냉동이나마 괜찮은 것을 사고, 한인 정육점에 양지머리를 사러 갔더니 덩어리는 없고 한입 크기로 썰어둔 것만 있어서 살짝 좌절. 이미 그 동네 한인 주부들이 쓸어간 후였는지도. 그래도 양지머리는 양지머리니까 대파, 통마늘, 양파 넣고 끓여서 고깃국물을 내고, 고기만 건져서 고명으로 쓰게 간장, 후추 등으로 양념해놓고 국물을 체에 걸러서 딱 이 인분만큼만 작은 냄비에 부어 끓이다가 만두랑 떡을 한번에 먹을 만큼만 넣고 익으면 그릇에 떠 담은 후, 미리 준비해 놓은 황백지단, 파, 소고기, 김을 고명으로 올렸다. 예전엔 물에 젖은 김이 죽도록 싫었는데 이제는 잘 먹는다. 젖은 튀김이 충격적이었던 2000년 즈음도 기억이 나나 지금은 카츠나베도 잘 먹듯이.

이건 얼쑤 거. 난 정말 한식은 예쁘게 못 담겠네. 특히 김 어쩔 ㅋㅋㅋㅋ

얼쑤에게도 한 그릇 떠 줬더니 재미있어했다. 그러고 보니 한국 음식은 재미있는 게 많은 것 같다. 알록달록한 고명을 얹은 음식이 다 그렇고, 밥과 함께 먹는 여러 가지 작은 반찬도 그렇고. 한국식 고기구이가 외식 시장에서 유행하는 것도 맛보다는 직접 굽는 재미 때문이 아닐까?

남은 장국과 고명으로는 만둣국을 만들어 한 끼, 남은 떡국 떡으로는 소고기 버섯 간장 떡볶이를 만들어 또 한 끼 + 두 명의 점심 도시락.

둘 다 푸르고 싱싱한 채소가 많이 들어간 요리가 아니라서 그 두 끼 이후에 나와 얼쑤는 채소오오오오! 를 외치며 푸릇한 것들을 찾아 먹었다.

그런데 어째서 설 전날이 까지 설날일까? 어렸을 적에 엄마 아빠한테 물어본 것 같은데 그 대답은 기억이 나지 않소. 찾아봐야지.

이글루스 가든 - 혼자 살며 음식 해먹기

덧글

  • 라쥬망 2012/01/28 16:17 # 답글

    오오 만두는 늘 맛있습니다. 저도 느끼한 거 연속으로 먹었더니 채소랑 과일 땡겨서 시장갑니다. ㅋㅋㅋㅋㅋㅋ
  • 취한배 2012/01/28 20:08 #

    만두는 좋죠 >.< 세계 각지에서 온 온갖 만두스러운 것들도 다 좋아요 음홧홧.
    저도 오늘 재래시장 가서 과일이랑 채소 잔뜩 사들고 돌아왔어요. 아 만족스럽다!
  • 프랑스적인삶 2012/01/29 03:27 # 답글

    아 정말 맛있어보여요!
    내 떡국은 너무 맛없어보여서 사진도 안찍고 그냥 먹었는데 말이죠. ;ㅁ;
  • 취한배 2012/01/30 08:53 #

    앗 칭찬 감사합니다!

    저도 사실 사진 찍으면서 왜 이렇게 사진발이 안 받지! 만두가 하나 터지긴 했지만 국물이 이렇게 탁하지 않은데! 하며 아쉬워했어요. 보통 한식은 보기보단 맛이 있는 것 같아요 ㅋㅋㅋㅋㅋ
  • 2012/01/29 21:37 # 답글

    아 한정식 요리책 사진 같아요. 어쩜 저렇게 정갈하기도 하지..
    항상 느끼지만 음식 색감이 너무 좋아요. 위의 떡국위의 가지런한 노랑 초록도 그렇고 자주 만드시는 샐러드의 빨간 토마토와 녹색 채소의 색도 그렇구요..
  • 취한배 2012/01/30 09:32 #

    아니 이런 극찬을! 제가 알록달록한 것을 좋아해요. 밥상도 알록달록한 것이 좋고, 옷도 알록달록한 것이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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