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위젯





[생존요리] 쉬는 날 점심은 국수 요리 survival cooking


쉬는 날에는 집에서 간단하지만 맛깔스러운 음식으로 요기하고, 볕 좋은 데 조용히 앉아서 혼자 빈둥거리는 것을 좋아한다. 이상하게도 날씨가 좋은 날일 수록 그렇다. 친구를 만나 펍에 가거나 쇼핑을 하는 것 보다는, 조용한 가운데 책도 읽고 기타도 퉁기고 이것 저것 뒤적이며 한없이 시간을 천천히 쓰면서, 딱히 할 일도 급한 일도 없이 사는 사람처럼 단순하지만 쉽지 않은 호사를 누리고만 싶다.

내 마음 속에 그런 날에 딱 어울리는 점심은 국수. 이 날은 금요일이었는데 얼쑤 생일 전날이라고 둘 다 휴가를 내고, 저녁 식사 하러 나간 것 빼고는 집에서 같이, 또 따로 놀았다. 점심도 같이 먹었는데, 생일 케이크나 얼쑤가 좋아하는 미역국 대신에 생일 국수를 말았다. 내가 먹고 싶어서. 메밀국수를 차갑게 식혀서 멘쯔유를 자작하게 붓고, 데친 시금치와 파, 튀긴 두부를 고명으로 얹어 곱게 갈아 즙을 쪽 짠 생강을 곁들여 먹었다. 집에 유부가 없어서 두부를 튀겨봤는데 이것도 맛있다. 먹다가 채친 김도 조금 더해서 먹었다.

나는 내가 먹고 싶은 것만, 내가 하고 싶을 때에, 내가 만들고 싶은 만큼 만들어 먹는다. 당연한 얘기인지 모르지만, 참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한정된 세상에 집에서 먹는 끼니라도 내 맘 대로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미성년(!)이었을 때 부모의 집에서 살면서 아빠의 취향 때문에 진밥을 먹다가 (온 식구가 잠자코 진밥을 먹게 하는 것이 bread earner의 권력이다. 물론 나는 불평했지만.), 독립해서 내 입맛에 맞게 고슬고슬한 밥을 지어 한 술 떴을 때 저절로 웃음이 나던 것도 그 때문이다.


새로 산 볼은 국수 그릇으로도 딱 좋았다. 커다란 탕면 그릇은 아니고 좀 큰 국그릇 정도의 크기. 이 그릇 사 놓고 매우 마음에 들어서 시리얼 그릇으로, 면기로, 덮밥 그릇으로, 샐러드 접시로, 국물 요리 담는 용으로 등등 쉬지 않고 쓰고 있다.


그렇지만 정작 먹을 때는 이렇게 그림이 하나도 안 보인다는 아쉬운 점이 있다. 전에도 이 얘기 했는데 또 하는 걸 보면 많이 아쉬운 가보다 ㅋㅋㅋ

이 시금치 - 잉글리쉬 스피니치 - 가 한국에서 주로 먹는 시금치랑 같은 시금치인 것 같은데, 씻는 것도 까다롭고 어릴 때 이 시금치를 별로 안 좋아해서 (특히 시금치 나물) 내가 사서 조리한 적이 거의 없다. 시금치를 먹어도 주로 샐러드로 먹는, 늘 야들야들하고 동그란 어린 시금치잎을 먹었고. 그런데 요즘 이 시금치에 맛들여서 싱싱한 게 눈에 띄면 꼭 한 단 사들고 온다. 제철이라 야들야들 맛있다. 내가 안 좋아한 건 깨소금과 참기름, 다진 마늘과 다진 파를 넣고 무친 시금치 나물이었지, 시금치 자체가 아니었던 것이다. 살짝 데쳐서 물기 꼭 짜서 별 간 하지 않고 먹어도 맛있고, 이렇게 국수 고명으로도 좋고, 일식으로 무친 것도 좋다. 깨를 갈아 무친 고마아에, 두부를 으깨 무친 시라아에, 가츠오부시를 올리고 간장 양념한 오히타시 모두 다. 송송 썰어 가지런히 담으면 더 예뻐보이기도 하고. 아니 이러니 동히님이 전에 하신 말씀 생각나네? 격하게 부정했는데...

오늘도 쉬는 날인데 날씨가 좋다. 게다가 오늘은 집에 혼자 있다! 혼자, 아주 아주 조용히, 빈둥거리러 가야겠다.

덧글

  • 高月 2012/11/12 15:11 # 답글

    맘에 들고 쓰기좋은 그릇이 생기면 참 좋죠!
    게다가 이딸라꺼 튼튼해서 퍽퍽 쓰기 참 좋잖아요? ㅎㅎ
  • 취한배 2012/11/13 19:39 #

    맞아요. 밥 먹을 때 마다 기분 좋아요! 예쁜 그릇 더 사고 싶다는 게 함정 ㅋㅋㅋ

    이딸라 저 그릇 도톰하고 튼튼해서 좋더라구요. 조심스럽지 못한 편이라 설거지하면서 벌써 몇 번 우당퉁탕...까지는 아니고 조금 이리저리 떨그럭거렸는데 이 안 빠져서 다행이예요 ㅋㅋㅋㅋ
  • 2012/11/12 20:54 # 답글

    생존 요리, 책 냅시다! 자체 사진 편집까지 다 해서요.
    어쩌면 저렇게 음식 색감, 각도, 구도 배치까지 감각이 예술이예요
    맛은 못 봤으니 모르겠지만 시각적으로만 볼 때 취한배님 정말 타고난 재능이 있는 거 같아요.
    아 이름부터 바꿔야해.. 생존요리는 저녁으로 요거트와 오이에 초장 찍어먹은 저같은 사람에게나 생존을 위한 요리지, 저건 호화 미식 뭐 이런 걸로 ㅋㅋㅋㅋ
  • 취한배 2012/11/13 19:51 #

    생존 요리 맞아요! 이게 다 먹고 살자고 시작해서 하는 짓 ㅋㅋㅋㅋ

    제가 블로그를 만든 (아마도?) 오 년 전 이 포스팅을 보여드려야겠군요: http://bateauivre.egloos.com/214816 이 꼬라지 좀 보시죠 ㅋㅋㅋ

    사진은 그냥 대충 찍는데 날씨 좋은 날 대낮에 찍으면 사진발 좀 잘 받더라구요. 반면에 저녁 식사 사진은...OTL
  • Agave 2012/11/13 17:41 # 답글

    아 한입만....
    저도 일본식 아에모노가 나물보다 맛나더라구요. 뭐랄까 세상엔 참기름과 마늘 말고도 수없는 양념이 있다!고 외치고 싶은 기분?
  • 취한배 2012/11/13 19:50 #

    낼름 다 먹어버렸습니다!

    그쵸, 그 깨소금 참기름 다진 마늘 다진 파 등의 "갖은 양념"이 별로 취향에 안 맞았던 것 같아요. 특히 다진 생마늘이랑 다진 파 부분?
  • sezz 2012/11/14 19:05 # 답글

    제가 국수를 안좋아하는데 이건 정말 맛있어 보여요. 고명을 참 맛깔나게 담으셨어요!
    그릇은 참 알뜰하게 활용하고 계시네요.ㅎㅎ
    뉴질에도 파는데가 있던데 저 볼이 NZ$61불이래서 조금 빈정 상했어요.
    머그컵도 NZ$49불이더라구요. 10불만 쌌어도 비싸단 생각 안들었을 것 같은데 말이에요.
  • 취한배 2012/11/19 10:43 #

    감사합니다 >.<
    전 국수라면 환장하는데!!!

    그릇 정말 맘에 들어서 플레이트도 사고 싶어요. 으헝 비싸 ㅠ.ㅠㅠㅠ 플레이트는 음식 담으면 너무 정신없어 보일 것 같기도 해서 꾹 참고 있어요. 차라리 디저트 플레이트 같은 게 나오면 좋을텐데 그런 건 안 나오고 젤 작은 게 22cm 짜리 ($37)... 15cm 짜리 소서를 사서 다과용으로 쓸까!?! 근데 소서 주제에 $20이나 함 ㅋㅋㅋㅋ

    아 호주 가격도 비싼데 뉴질 가격은 더 심하네요. 우와 볼 하나에 61불 ㅠ.ㅠㅠㅠ 머그를 어떻게 50불 주고 사겠어요. 진짜 너무 비싸다!!!
  • 동히 2012/11/14 22:45 # 답글

    생존 요리, 책 냅시다! 자체 사진 편집까지 다 해서요.
    어쩌면 저렇게 음식 색감, 각도, 구도 배치까지 감각이 예술이예요
    여기에 찬성 !!! 나오면 제가 삽니다. 한 세권쯤 삽니다.!!

    그리고 제목바꾸기 찬성입니다. ㅋ돌맞으니까 제목은 생존요리 아닙니다. ㅋ 이건 뭐. 죽고 살고의 문제는 저 멀리~, 보기에도 좋은 떡 먹기에도 좋다라든가 빚까지 좋은 황금살구. 아.... 네이밍... 제가 젤 약한 부분..ㅠㅠ 포긔.
    암튼, 요리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지만 비주얼로 눈도 보양되는 취한배님의 요리사진들이잖습니까.
  • 취한배 2012/11/19 10:45 #

    아니 이 분들이 왜 이러셔 ㅋㅋㅋ
    놀러 오시면 밥 한 끼 해 드려야겠네!!! 아유!!!!

    저 어젯밤 꿈에 일본에 일 년 동안 가서 살게 되었는데 자금은 달랑 삼백만원 뿐이니 취직은 해야겠는데 난 일본어도 못해서 구인 광고도 제대로 못 찾아보겠고 학원이라도 등록해서 배워야할 것 같은데 그럴 형편은 안 되는 것 같고 그래서 막 스트레스 받다가 깼어요. 꿈에 동히님도 나왔던 것 같은데 잘 기억은 안 나네요.
  • 2012/11/15 22:0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2/11/19 10:4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